팀을 바꾸고 나서 브레멘에 안 간지 너무 오래됐다. Rom에게 "나 오랜만에 브레멘 갈까? 나 가면 점심으로 쌀 먹으러 갈 거야? 밥 잘하는 식당 찾아놔야 돼, 알겠지?"하고 신신당부를 해놨다. 혼자 기차 타고 브레멘까지 가기에는 조금 심심하니 몇몇 다른 함부르크에서 일하는 친한 회사 사람들을 꼬셨다. Lin은 "Rom이 너 꼭 데리고 오랬는데! 너 브레멘에서 일 안 해봤다고 이번 기회에 같이 오랬는데! Rom이 밥 잘하는 곳 찾아서 우리 데려가주겠다고 했는데 정말 안 갈 거야?!"라고 꼬셨고, Vin은 내가 "브레멘.. 점심.. 밥 잘하는 곳.. Rom이 우리를 기다려..." 하니까 별 고민 없이 ok 했다.
아침부터 아주 함부르크 답게 우중충 했고, 우중충할 때 우중충한 중앙역 오니까 혼자가는게 아니여서 다행이었다. 안 그랬으면 기분이 축 처졌을 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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Rom은 전에 내가 하는 밥타령을 아주 재미있게 들어주고는 내가 파스타나 피자 혹은 빵을 먹을 때마다 " Meine Liebe, 쌀 못 먹어서 어떻게? 밥 없으면 그건 식사가 아니잖아"하고 장난을 치곤 했다. 그래서 고민하다가 이 날 나를 태국 식당에 데려갔다. 내가 원하는 건 날아다니는 쌀 아니고 붙어서 안 떨어지는 쌀 (Klebreis)이었어서 태국 식당에 간다는 말에 전혀 기대 안 하고 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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근데 진짜 기대 안 하고 갔는데, 뭐야 이거.. 쌀 진짜 맛있네 여기? 그래서 Rom에게 독일에 있는 식당에서 먹어본 쌀 중에 제일 맛있는 쌀이라는 평가를 내줬다. Klebreis는 아닌데 그렇다고 윤기 없이 날라다니는 그런 쌀도 아닌 좀 통통하고, 기름에 잘 볶아져서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. 문제는 또 쌀만 맛있고 다른 게 그냥 그랬다는 점. 하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점심이었어서 기분 좋아져서 가을에 갓 수확한 햅쌀로 밥을 하면 밥 알갱이 하나하나가 얼마나 반짝이고 윤기가 흐르는지, 얼마나 남다르게 맛있고 살살 녹는지 이야기해 줬다. 같이 이야기를 듣던 다른 동료가 그렇게 맛있으면 다음에 가져와서 맛 보여줘라고 장난 식으로 말했는데 무거워서 못 가져오고, 가져와도 제대로 된 전기밥솥이 없어서 못 해준다고 밥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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밥 먹고 후식으로 젤라또도 샀다. 스니커맛으로 골랐는데 지금까지 먹어본 스니커 아이스크림 중에 제일 맛없었다. 사자마자 얼른 사무실 가자고 회사 사람들을 재촉했다. 오늘 오전 내내 통관 문제로 바빴는데 오후에도 내내 정신없이 일 해결하느라 바쁠 예정이었다. 하필 브레멘 오는 날 다들 업무량 적당히 있는데 나만 발등에 불 떨어져 있었고, 다른 동료들이 안 바쁜걸 부러워할 틈도 없었다. 그래도 브레멘 안 왔으면 점심도 대충 먹고 머리 싸매고 끙끙댔을 텐데 제대로 점심 먹고 기분 전환하니 좋았다.
오후에 일 하면서 다행이었던 건 하필 브레멘 사무실에 procurement 팀에서 일하는 Arn이 있어서 여러 가지로 즉석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. 통관 절차로 인해서 고객한테 1400유로를 승인받을지 아니면 우리 선에서 다른 운송사를 찾을지 고민 중이었는데 Arn이랑 통관 쪽에서 일했던 Mar까지 와서 어떻게 하는 게 고객도 좋고 우리도 일이 적은 방법일지 같이 의논할 수 있었다.
퇴근 후 Rom이 브레멘에 작은고 예쁜 길거리가 있는데 거기 가자며 우리를 데려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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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 옷차림만 보면 지금은 절대 8월 중순 같지가 않다. 나 역시도 반팔에 맨투맨을 입고 스카프를 한 채로 걸어 다녔다. 날은 흐려도 관광객은 꽤 있어서 브레멘 음악대 동물들 동상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. 저 당나귀 다리 잡으면 돈이 들어온대서 나도 작년에 왔을 때 여기서 저 당나귀 다리 잡고 사진 찍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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Rom이 숨은 구경거리라면서 보여준 이것! 저기에 동전 넣으면 브레멘 음악대 동물 소리가 나온다. Rom이 동전을 넣자 조금 정성 안 담긴 녹음 소리가 흘러나와서 웃겼다. 디테일이 독일스럽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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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도착한 오늘의 목적지. 아기자기한 집들이 늘어져있고 작은 카페와 상점들이 있는데 너무 상업적이지 않아서 아늑하게 예쁜 거리였다. 전에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추천 관광지로 나온 걸 본 적 있는데 브레멘 근처에 산다면 모를까, 브레멘 관광 오는 거 진짜 비추다. 예전에 교환학생 때 브레멘 음악대에 혹해서 삼일 여행 왔다가 대대대 실망하고 갔던 적이 있다. 브레멘만의 역사와 행사 뭐 그런 거가 목적이 아닌 이상은 도시 관광만 따졌을 때 브레멘은 그냥 어쩌다가 출장 와서 퇴근하고 한두 시간 구경할 때 괜찮은 정도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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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도 같이 있는 사람이 좋으면 뭘 봐도 즐겁고 뭘 먹어도 신나는 법이다. 함부르크에서 재택근무 했으면 퇴근하고도 일생각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저녁 내내 헤롱거렸을 것이다. 업무 중에 문제가 생기면 너무 과몰입하다 보니 퇴근 후 저녁시간도 고달프게 느껴지는데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랑 같이 와서 돌아다니니까 일 생각 없이 브래멘의 거리들을 구경하고 있는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. 물론, 날씨가 우중충한 건 사실이니 나중에 해 뜨고 예쁠 때 한 번 더 오자고 얘기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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저 길 뒤로 예쁜 크리스마스 상점이 있었는데 저녁 6시에 가니 이미 문을 닫아서 안에는 보지 못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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저녁은 여기에서 먹었는데 넷이서 타파스 세트 두 개 시키니까 딱이었다. 내부가 굉장히 아늑했고 음식도 나름 괜찮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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저녁 8시 반이라 이제 다시 함부르크로 돌아갈 시간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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Rom이 중앙역까지 데려다주고 나는 Vin이랑 Lin이랑 기차 타고 함부르크에 왔다. 기차 안에서 우리 셋이 너무 신나서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 셋다 어떻게 독일로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다 보니 이야깃거리가 끊이질 않았다. Vin은 내가 한국에서 오스트리아로 갈 때 10시간 넘게 비행기 타고 가는 건 너무 재미없어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버스를 타고 유럽에 들어갔단 이야기를 엄청 인상 깊어했다. 몇 살이었냐고 묻길래 만 나이 계산해 보니 24살이었다. 엄청 어렸는데 대단하네,라고 하길래 "그런가..? 음. 그러게.... 근데 한국에서 일을 못 구해서 어떻게든 떠나야 했고 떠나가는 과정은 그래도 나름대로 즐거웠어"라고 대답했다. 우리 셋다 독일에 깊은 뜻이 있어서 온 게 아니었다. 서로서로에게 고생했네, 잘 정착했네, 자랑스럽다, 회사에서 이렇게 서로를 알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 등등 따뜻한 말을 많이 나누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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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차 타고 함부르크 잘 가고 있다고 셋이서 셀카를 찍어서 Rom에게 사진을 보냈다. 사진을 받아 본 Rom이 너네 왜 2004년에 가 있냐면서 울면서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. 브레멘에 갔다가 시간여행까지 하고 온 멋진 날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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